비발디 뒤에 가려졌던 천재 음악가, 안나 마리아 재조명

안토니오 비발디가 자신의 가장 난도 높은 곡들을 헌정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마리아 델라 피에타의 이야기가 호주에서 되살아난다. 호주 브란덴부르크 오케스트라(ABO)는 한때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20세기 초 비발디가 재조명되는 과정에서 역사 속 각주로 밀려난 그의 삶과 음악을 무대에 올린다.
안나 마리아의 삶은 18세기 베네치아의 한 고아원에서 시작됐다.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집이었던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벽에 설치된 작은 공간 '스카페타'에 갓난아기였던 그녀가 놓였다. 당시 수로에 버려지는 사생아들이 많았던 현실을 고려하면 비극적인 삶의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다. 이곳의 소녀들은 음악가로 훈련받았고, 안나 마리아는 그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보였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이는 당시 고아원의 바이올린 교사였던 붉은 머리의 사제, 안토니오 비발디였다. 비발디는 안나 마리아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곡들을 쓰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걸맞은 악기를 직접 구해줬다. 익명의 한 시인은 그녀의 연주를 두고 “수많은 천사가 감히 가까이 맴돌았다”고 찬사를 보냈으며, 한 프랑스 학자는 그녀가 당대 거장 주세페 타르티니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베네치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구가 미키 화이트에 따르면, 안나 마리아는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비올라 다모레, 만돌린, 테오르보(14현 류트), 하프시코드 등 다양한 악기를 거장 수준으로 다뤘다. 화이트는 “비발디가 쓰는 어떤 곡이든 그녀는 연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창조적 관계의 증거는 베네치아 음악원 도서관에 보관된 그녀의 개인 악보집에 남아있다. 이 악보집에는 비발디가 오직 그녀를 위해 작곡한 26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ABO 공연에서는 비발디가 '안나 마리아를 위하여'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를 비롯해 타르티니, 피젠델 등이 그녀를 위해 쓴 작품들이 연주된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오거스타 맥케이 로지가 솔리스트 겸 게스트 감독으로 호주 데뷔 무대를 갖는다. 맥케이 로지는 비발디가 그녀를 위해 쓴 곡들을 “마치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줄 위를 걷는 곡예와 같다”고 표현했다.
ABO의 공동 창립자이자 예술 감독인 폴 다이어는 “300년 전 버려졌던 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21세기로 가져오고 싶었다”며 젊은 인재들을 통해 안나 마리아의 이야기를 전달하기로 의도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이야기는 최근 소설과 영화로도 제작되며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