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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기억을 앗아간 치매, 손녀가 기록한 사랑과 상실의 순간들

할머니의 기억을 앗아간 치매, 손녀가 기록한 사랑과 상실의 순간들

손녀를 구하기 위해 200미터를 달려가 맨손으로 나귀를 쫓아냈던 70세 할머니. 앤 도로시 밀러(애칭 낸시) 씨는 언제나 가족에게 용감하고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녀의 손녀는 어린 시절 이 일화를 떠올리며, 할머니가 있었기에 세상의 어떤 어려움과도 맞설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독립성과 기억, 자아는 치매라는 병 앞에서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낸시 씨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약 5년 후, 14세의 나이에 호주로 이주해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17세에 결혼해 첫 아이를 가졌고, 세 자녀와 위탁 아동 한 명을 키우느라 평생 수영이나 운전을 배울 시간조차 없었다. 그녀는 버터를 듬뿍 넣은 자신만의 정어리 샌드위치를 손주들에게 먹이며 피아노와 수영 강습에 데려다주던 헌신적인 할머니였다.

그녀에게 미묘한 변화가 찾아온 것은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였다. 남편 역시 치매의 일종인 픽 병을 앓았다. 낸시 씨는 웃음을 너무 오래 짓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어느 크리스마스에 해변에서 일어났다. 가족과 함께 있던 할머니가 잠시 후 사라졌고, 한참 뒤 다른 가족의 아이들과 어울려 모래성을 쌓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행복해 보였지만, 동시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무력한 모습에 가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두 차례 넘어져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마취제로 인한 섬망 증세를 겪으며 혼란 증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수년이 지난 후에야 혈관성 치매와 알츠하이머병이 혼합된 진단을 받았다. 가족의 도움으로 낸시 씨는 예상보다 오랫동안 사랑하는 반려견 토미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생을 알뜰하게 살아온 그녀가 갑자기 매주 수천 달러에 달하는 큰돈을 은행에서 인출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자 가족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아들이 법적 후견인으로서 재정 관리를 맡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낸시 씨는 가족의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평생을 독립적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요양원 생활 적응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손녀는 아름다웠던 할머니와의 유대만큼이나 그녀를 잃어가는 과정의 아픔이 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