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화된 미술관은 이제 그만…스위스 로잔의 '날것의 예술'

스위스 로잔은 제네바 호수와 프랑스 알프스의 장관을 품고 있지만, 대다수 방문객의 발길은 올림픽 박물관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기존의 예술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특별한 미술관이 숨어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아르 브뤼(Art Brut)’ 작품을 소장한 ‘아르 브뤼 컬렉션(Collection de l’Art Brut)’이다.
‘아르 브뤼’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예술’을 의미하며, 영어권에서는 보통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로 불린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을 만든 이들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이들은 예술계의 유행이나 대중의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 창작 활동에 몰두했다. 작가 중 다수는 정신병원이나 교도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으며, 미술관은 이들의 상세한 삶의 이력을 함께 소개해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다.
미술관에 들어서면 흰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칠해진 벽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는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예술이 주는 강렬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다. 전시된 작품들 역시 정형화된 사각형 캔버스를 벗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길고 가느다란 형태부터 불규칙한 모양까지, 예술은 정해진 틀에 갇힐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곳의 예술가들은 재료의 한계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한 제빵사는 으깬 달걀 껍질과 빵 부스러기를 붙여 콜라주를 만들었고, 어떤 작가는 훔친 이정표석으로 석상을, 코르크 마개로 외로운 인물상을 조각했다. 수감자였던 클레망 프레이스는 부러진 숟가락 하나로 감방의 나무판에 그림자 같은 인간의 형상과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 넣었다.
스위스 풍경을 그린 프란츠 오피츠의 작품은 처음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광색 풀과 유리 조각 같은 산, 금속성 얼굴을 한 양들이 그려져 있어 작가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엿보게 한다. 반면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라 먼 곳을 꿈꿨던 빌렘 반 셴크는 뉴욕의 기차, 태국의 해변, 사하라 사막 등 자신이 여행한 장소들을 복잡한 콜라주 작품으로 남겼다.
아르 브뤼 컬렉션은 관람객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누가 예술가를 결정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로잔 방문 시 열차로 제네바 공항에서 45분이면 도착할 수 있으며, 미술관 인근에는 1박에 118 스위스 프랑(약 213 호주달러)부터 시작하는 숙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