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원작 초월? 원작의 정의부터 다시 봐야

좋아하는 책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면 늘 ‘원작만큼 훌륭한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대부분의 영화는 독서 중 상상했던 경이로운 장면들을 스크린에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지만, ‘죠스’나 ‘대부’처럼 드물게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장대하고 강렬하며 시각적으로 숨 막히는 고전적 서사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원작과 비교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어떤 ‘책’을 원작으로 삼을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오늘날 고대 그리스어로 쓰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원문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접하는 책은 결국 번역본이며, 어떤 번역본을 택하든 그것은 원문에서 일정 부분 타협하고 변형된 일종의 ‘각색’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호메로스의 경우 ‘원문’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문화의 산물로, 종이나 파피루스에 기록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었다. 당시 그리스 문화에서 오늘날의 순회 연예인과 같은 역할을 했던 음유시인들이 암송하고 노래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전 서사시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디세이아’의 문자 기록은 기원전 300년경의 파편들이다. 이는 서사시가 구전으로 퍼지기 시작한 지 약 5세기가 흐른 뒤의 일이다. 오늘날 우리가 표준으로 삼는 그리스어 텍스트 역시 여러 고대 파편과 중세 사본을 바탕으로 학자들이 재구성한 최선의 추정치일 뿐, 호메로스가 사용했던 단어를 정확히 복원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호메로스라는 인물의 실존 여부조차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를 이오니아 출신의 맹인 음유시인으로 전했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여러 사람의 공동 창작물을 대표하기 위해 후대에 만들어진 신화적 인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설령 호메로스가 실존했더라도, 그는 트로이 전쟁이나 오디세우스의 여정처럼 이미 그리스 전통에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들을 재활용했을 뿐이다. 그의 천재성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사용된 강력한 언어에 있으며, 이 언어 덕분에 그의 서사시는 서양 문학의 초석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호메로스의 작품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자유롭게 각색되어 왔다. 고대 로마인들은 오디세우스에게 ‘율리시스’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제우스를 유피테르로, 포세이돈을 넵투누스로 부르는 등 신들의 이름도 바꿨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에서 트로이와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를 하나로 압축하며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기도 했다.
놀란 감독 역시 이러한 각색의 전통을 잇는다. 그의 영화에서 엘리엇 페이지가 연기한 ‘시논’은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인물은 호메로스의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시논은 베르길리우스가 만들어낸 인물로, 놀란은 이를 자신의 영화에 맞게 차용해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결국 놀란의 ‘오디세이’는 단순히 3천 년 전 텍스트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유구한 각색의 역사에 동참한 또 하나의 새로운 버전인 셈이다.